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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October 8, 2012

꽃집_7

   첼로는 그렇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도 봄이 되고 여름이 와도 첼로는 다시 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마치 공연이 있어서 금방 다시 올 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첼로는 왜 중후하고 멋진 소리를 다시 돌려줄 수 없었나 모르겠다. 퇴근 길이면 항상 그 멀리서 가까이서 오고 가는 그 첼로 소리에 발걸음을 아주 천천히 떼야 했었는데 말이다. 첼로는 그런 발걸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물론 모르니까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알려주고 싶지만, 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테니까 그런 사실을 알려 줄 수도 없는 게다.
  그렇게 치면 이제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낼 것도 첼로가 아닌 게 된다. 그냥 일본에 가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는 결론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일까? 사실 크리스마스 때 꽃집이 아주 잘 되지는 않는다. 아마 케익집이 더 잘 될테지. 그렇지만, 크리스마스를 음식점에서 수많은 손님들과 종업원들 사이에서 정신 없이 보낸다는 사실도 그닥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내게 크리스마스가 오기는 할까? 첼로도 없는 크리스마스인데 말이다. 그래도 아직 앵초 할머니가 있으니까 논의를 드려야 할 것 같긴 하다.
  앵초 할머니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계획하고 있을까? 혹시 이미 많은 계획을 세웠는데, 내가 일본에 간다고 하면 실망하시지는 않을까?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까?
  왜 이런 갈등을 내가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가끔은 이런 특별한 날들이 없이 인생에서는 그냥 평범한 날들로만 채워졌으면 좋겠다. 

Wednesday, September 26, 2012

꽃집_6

   도시를 구둣발로 걷는다는 것은 시골을 운동화로 걷는 일, 아니 등산을 운동화로 해내려고 했던, 아니 등산을 구둣발로 걷는 일보다 더 슬픈 일이었다.
   할미꽃 대신 다른 꽃을 생각해 내겠다던 굳은 결심은 어디로 가고, 아직까지 첼로가 다시 돌아 왔는지 인사도 못 했고, 밀린 일들만이 머리 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아침에 눈을 뜨는데, 생각난 꽃은 민들레였는데, 민들레 전설도 그닥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 없었다. 할미꽃이나 민들레나.... 결국 또 다른 꽃을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잠을 청해봤지만, 승산없이 그냥 다시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했다.
   아! 앵초꽃! 야생화이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앵초꽃!

 "할머니, 할미꽃 대신 앵초꽃 합시다!"
  대문에 들어 서면서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안에서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드르륵 열렸다.
  "아침부터 뭔 소리여?"
  "제가 다른 꽃 생각해 드리기로 했잖아요. 앵초꽃이 좋겠어요."
  "아이고, 그걸 아직도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며칠동안 고민했는데, 의외로 다른 꽃이 잘 생각나질 않더라구요. 그런데, 오늘 아침 앵초꽃이 떠올랐어요.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살린 이야기가 가장 할머니랑 잘 어울리죠.야생화여서 길 가다 볼 수 있는 평범한 꽃이지만, 아름다운 꽃이에요."
  "전설이라는 게 내가 생각해 내면 내 전설이 되는 거지 굳이 전설을 찾을 것까지야...꽃집에 앵초꽃 사러 오는 사람은 없겠네. 야생화라고 했으니까."
  "대신 길에서 사람들을 반겨주니 더 좋죠. 아무튼, 할머니 이젠 앵초할머니에요!"
  "어감은 좋다. 앵초 할머니!"
  "저 이제 출근합니다. 앵초 할머니!"

Monday, August 13, 2012

꽃집_5

"요즘 같은 세상에 꽃을 누가 사?"

 엄마는 늘 그렇게 얘기하곤 했다. 글쎄다. 누가 꽃을 살까? 뭔가 특별한 일이 있는 사람들? 일상에서 지친 사람들? 누군가의 생일에? 누군가의 장례식에? 생각해보면 꽃을 살 일은 많이 있다. 하지만, 굳이 꽃을 스스로 사는 일은 많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엄마는 음식점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겠다는 내게 어떤 불평도 불만도 모두 다 쏟아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는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꽃을 살까?"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꽃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인다. 매일 매일 그들의 눈빛을 보면서 세상이 반짝 빛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고, 꽃들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 아니라, 꽃을 사러 온 손님이 꽃에게 오히려 생명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꽃을 사러 오는 사람은 꽃만큼이나 아름답다.

 첼로는 오늘도 침묵에 아무 소리 없이 하루를 보내는지 조용했다. 할머니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계셨다. 같이 저녁이라도 할까해서 찾아 갔더니, 할머니는 이미 잠자리에 드시려고 준비중이셨다.

"오늘은 일찍 주무시네요?"
"늙어서 그런지 요즘은 해만 떨어지면 졸리네."
"해가 떨어지면 젊은 꽃들도 모두 다 졸려요."
"난 할미꽃이잖어."
"할미꽃은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그 전설이 너무 슬퍼요. 그러니까, 다른 꽃으로 바꿔요."
"아녀, 그냥 할미꽃 할래."
"일찍 주무세요. 저 갈게요."

 할머니가 할미꽃을 고집하는 이유나 내가 꽃집을 하는 이유나 아마 둘 다 모두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우리의 고집은 슬픈 전설을 뒤로 하고 오늘을 살아 가는 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할머니가 할미꽃이 되는 것은 더더욱 싫다고 생각했고, 오늘밤 안으로 다른 꽃을 생각해 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무슨 꽃이 할머니한테 잘 어울릴까? 이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아마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Monday, January 16, 2012

꽃집_4



  첼로 소리가 없다는 것은 세상이 죽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골목길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정말 마치 빈집을, 아주 오랫동안 비어있었던 집은 지나오는 기분이었다. 분명 첼로는 그 집을 일주일만 비운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렸겠지만, 그 집을 지나올 때면, 마치 일주일이 아니라 일년이 넘게 비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은히 존재하던 그 소리가 침묵으로 바뀔 때 내 마음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침묵의 반응이 온 것일까? 왜 그 소리가 이리도 그립지?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길은 우리집 마당에서 뻗쳐 나온 나무 때문에 가로등 그늘이 함께 져 있었다. 그 조용한 그림자를 지나 대문에 도착하니 한숨이 나왔다. 오늘 하루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고민으로 너무 정신없이 보낸 것 같아서 아쉽기도 했다. 이렇게 빨리 살려고 꽃집을 연 것은 아닌데 말이다. 천천히 살기 위해서 여기서 꽃집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말이다.
  친척집에서 살았던 내 학창시절은 내가 가장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었고,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척집에서 나왔다. 그 후에는 뭐든지 혼자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밥도 혼자서 먹을 수 있고, 잠도 혼자서 잘 수 있고, 공부도 혼자서 할 수 있고, 누구와 함께 있지 않아도, 아니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그렇게도 달콤할 줄은 몰랐다. 물론 그것도 길지 않아 더이상 달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1년을 혼자서 살고서는 일본에 갔다. 역시 엄마가 주는 밥을 먹는 것은 다른 느낌이었다. 엄마는 재일교포였지만, 늘 내게는 일본사람 같았다. 오히려 내게 일본사람의 피가 더 많이 흐르는데, 아니, 사실 엄마는 일본사람의 피가 하나도 흐르지 않지. 그런데, 나보다 훨씬 더 일본인 같았고, 난 한국에서 유학온 학생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사랑이 고팠던 내게 맛있는 밥을 지어내 줬다. 일본에서 그렇게 엄마밥을 먹고 3년 만에 다시 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 엄마는 나를 내 쫓듯 한국으로 돌려 보냈다. 내 일을, 내일을 찾을 수 있게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음식점을 하라고 계속 설득하셨지만, 결국 나는 꽃집을 당당히 차렸다. 보란듯이. 그런데, 이 꽃집이 이제는 내 삶에서 천천히라는 속도를 추월해 버리고 있는 것 같아서 가끔 무겁게 느껴진다. 특히 오늘 같이 꽃 생각보다는 고민거리를 머리에 안고 하루종일 있는 경우, 더욱 꽃들에게 미안해진다. 아무래도 이 길도 내게는 아니었나보다.
  첼로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가 멀리 들렸다가, 그 소리가 더욱 그리운 퇴근길인 것 같다.

Saturday, December 17, 2011

꽃집_3


“하나꼬, 도꼬? 이마 난지? 아직도 안 나왔어? 이제 꽃집도 하기 싫은거야?”
“오까아상, 지금 막 도착했어요.”
급히 달려와 전화를 받느라 아직 꽃집 안에 불도 못 켜고 우두커니 수화기만 우선 들었다.
“하나꼬, 크리수마수와?”
“크리수마수?”
“난까오모시로이모노아루나노?”
“아리마셍케도......”
“니혼에 료코. 도우?”
“오까아상, 니혼와 죳또....”
“오오사카또 크리수마수, 난까 로만치쿠나!”
“오까아상!”
“맞데이루요.”
“오까아상, 오까아.....상!”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는 일방적이다. 꽃집을 열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도 일본에서 엄마와 함께 요리를 배우는 게 어떻겠냐고 한 달 넘게 나를 설득했지만, 나도 그 엄마에 그 딸. 결국 한국에서 꽃집을 열 수 있게 됐다. 그나저나, 이번 크리스마스를 정말 일본에서 보내야 하는 것일까? 엄마는 분명 크리스마스 때가 가장 바쁠테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족이며 연인들이 비싼 요리점을 찾아 돈을 쓰러 오기 때문에 그 때가 아마 가장 바쁠 시기일텐데, 엄마가 내게 일본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라고 하는 이유는 그 바쁜 일손을 거들라고 하는 이유도 하나 덧보태야 솔직한 대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연말연시가 되면 혼자 지내는 것도 싫어하셨고, 신정을 지내는 일본에서는 더욱 그런 분위기가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새해가 되면서 절정을 이루는 것 같았다.
 엄마는 만주에서 태어났다. 엄마가 태어난 이듬해인 1945년 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만주를 떠났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나라에서 공공연히 존재한 인간 계급은 한국인을 가장 천한 백성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바느질 솜씨가 좋았던 외할머니는 남은 천조각들을 모아 기모노를 손수 만들어 입었고, 나가사키로 밀항을 시도할 때도 갈고 닦은 일본어 실력으로 일본인인 척, 위조된 신분증을 가지고 일본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히로시마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형을 찾아 갔지만 쉽게 찾을 방도가 없었고, 결국 흘러흘러 오오사카에 있는 외할머니의 여동생을 찾아가 함께 살게 됐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엄마는 더이상 그 두 도시에 돌아갈 일이 없게 생겼다. 결국 엄마는 오오사카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됐다. 외할아버지는 해방된 조선을 찾으려 했으나, 세월은 쉽게 흘러 어느덧 엄마가 6살이 되었고, 한국은 어느새 전쟁의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세월은 흘러, 엄마가 스무살이 됐을 때, 아빠를 만났다. 아빠와 함께 대학도 다니고, 외할머니가 하던 의상실을 엄마가 물려 받으려고 열심히 배우려고 시도 하기도 했다지만, 결국 엄마는 하고 싶어했던 음식점을 열었다. 예쁜 전통 일본식 가정집에서 시작한 작은 음식점이 지금은 오오사카에서도 꽤 큰, 그리고 유명한 음식점이 되었다.
 나도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일본인 아버지와 재일교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어를 잘 하지도 못하고, 태어난 지 3년 째 된 해부터 한국에서 줄 곧 살았다. 엄마는 아빠와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냥 한국에 와서 열심히 한식을 배웠다. 임신한 몸으로 한식당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아마 엄청난 도전이었을텐데, 당신께서는 그 일을 했기 때문에 현재의 당신이 있다고 항상 말씀하신다. 오오사카에 있는 그 음식점의 이름 또한, 하나야. 꽃집이다.
 엄마가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것은 한국에서 자신의 조국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버렸다. 가끔씩 전화를 해 오거나,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지만, 엄마는 한국에 자주 오지 않았다. 친척집에서 사는 내게 친척이라는 존재는 참 멀고도 이상한 존재들이었는데, 사촌 동생들은 절대 나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일본에서 온 나같은 아이는 그저 매국노였을까? 뭐, 어렸으니까 그렇겠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인데도, 내가 미웠나보다. 그래도 그 때는 그들이 참 고마우면서도 미웠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것들이 걱정이 되기 보다는 우선, 크리스마스가 걱정이다. 최근 크리스마스는 5년 내내 꽃집 맞은 편에 있는 카페에서 보냈다. 카페 주인, 첼로, 그리고 앞집 할머니와 함께 크리스마스 케잌도 굽고 트리 장식도 하고, 그렇게 5년 간을 보냈는데, 내가 일본에 가 버리면 어쩐다......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노릇이었다. 어느새 해가 진다. 조용히.


Monday, November 14, 2011

꽃집_2


 첼로 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 5년 간 듣고 있던 첼로 소리가 하루 아침에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꽃집에 가는 길에 앞집에 사시는 할머니께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사갔다고 하면 어쩌지? 내가 연주할 수 없는 큰 악기를 누군가 매일 연주해 준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꽃집에 나가는 시간은 매일마다 다르다. 꽃집에는 오픈 시간을 꽃집 주인이 도착하는대로 엽니다라고 써 놨다. 물론 문 닫는 시간도 꽃집주인이 하루를 마감하고 싶을 때라고 적어놓았기 때문에 내가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는 정말 내 꽃집이었다. 오늘은 꽃집에 나가기 전에 앞집 할머니께 들려야 하기 때문에 조금 일찍 나섰다. 물론 꼭 몇 시에 꽃집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지 않은 여타의 일들을 해결하고 꽃집을 갈 때면 늘 꽃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잘 지내셨어요?”
“깽깽이 이사갔냐고?”
“네? 이사갔어요?”
“아니, 그거 물어 볼려구 온 거 아닌가?”
“그렇긴 해요. 그런데 정말 이사갔어요?”
“아니라니까.”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그걸 물으러 왔다는 걸......”
“뭐 변할 때마다 나한테 와서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물어보니까 이번에도 물어보겠거니 했지. 이사 안 갔어. 외국으로 공연하러 간대. 한 일주일 있다가 온다고 하던데?”
“해외 공연이요? 깽깽이 가지고 간 거에요?”
“그런가봐. 그 큰 걸 가지고 그렇게 돌아다니기가 힘들텐데 말이야.”
“그러게요. 할머니, 저 이만 가 볼게요. 감이 잘 열렸는데, 안 따세요?”
“귀찮네. 먹고 싶으면 따 먹어. 아니면 까치나 먹겠지, 뭐.”
“오늘 말고 내일 점심 때 와서 딸게요. 안녕히 계세요.”
“꽃집 나가는 거야?”
“네, 오늘은 국화가 새로 들어올 날이에요.”
“우리집 마당에도 국화 많아.”
“네, 저도 마당에 노란 국화 있어요. 가을에 국화가 좋죠. 전 특히 노란 국화가 좋아요.”
“그려. 걸어가는 거지? 자전거는 요즘 왜 안 타? 하긴 좀 날이 추워졌긴 해.”
“걸어다녀도 좋아요. 가을 바람도 맞고, 코스모스도 많이 볼 수 있구요. 내일 올게요.”
“어여 가.”
 그렇게 끝이 없던 아침 대화는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끝이 났다. 한숨이 나왔다. 첼로가 해외 공연을 갔다니...... 이젠 제법 유명해져 버린 것일까?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공연을 많이 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첼로 소리 없이 이 길을 걸어 돌아올 생각을 하니, 가는 길도 길게만 느껴졌다. 물론 첼로가 언젠가는 유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 귀에도 그 소리는 아주 멋졌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빨리 해외 공연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꽃집을 열쇠로 열고 있는데, 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꽃집으로 전화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손님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동응답기가 없는 전화를 설치하려고 했지만, 굳이 꼭 자동응답기가 있는 전화를 설치하게 만든 것은 일본에 있는 엄마였다. 전화벨이 세 번 울리자 자동응답기에서 경쾌한 음악과 함께 어설픈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하나 꽃집입니다. 삐 소리 후에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삐-

Saturday, November 12, 2011

꽃집_1


 겨울이 올 것만 같은데 아직 안 오고 있다. 11월은 늘 그런 느낌이었다. 뭔가 확 추워질 것만 같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하는 그런 날씨들의 연속-가을이긴 가을이지만 겨울을 기다려야 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춥게만 느껴지는 그런 시기, 11월은 늘 추운, 아니 실재보다 훨씬 추운 기다림이었다. 수능이 끝난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아직 춥지는 않은지 교복만 입고도 여기저기 당당히 걸어다니는 무리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이 대도시로 밀려드는 교복입은 학생들은 모두 시골에서 올라와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는데, 또 다시 더 큰 도시로 올라가기 위해 또 밤늦게 공부하고 이제 수능이 끝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날을 기다리는 듯 열심히 기도를 하는 자세로 성적표를 기다리겠지?
 눈이 올 것만 같은 날씨였지만, 11월은 그닥 춥지 않은 이유로 대신 비가 내렸다. 그래서 춥긴 하지만, 아주 춥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게 마음을 매어 두었다. 길거리 여기 저기 노점상에서는 겨울 준비를 위해서 부츠를 사라는 상인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부츠를 겨울마다 사는 건 아니겠지? 겨울 부츠를 매 겨울마다 샀다면 아마 집에는 부츠가 몇 개쯤 쌓여 있을지 생각해 보니, 신발장이 금방 폭발해 버렸다.
 폭발해버린 신발장을 정리하고, 우선 식당을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뭐 먹을만 한 것들이 있을까? 한국 음식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고,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식당에서 찾은 건 일본식 쇠고기 덮밥이었다. 주인 아저씨는 식당을 연 지 얼마 안 됐는지 메뉴를 하나 하나 정성껏 설명해 주려고 했고, 실수를 할 때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 하는지 세어보게 됐다. 늘 반복하는 일은 몇 번인지 세어보는 재미가 있는 법이다. 주인 아저씨는 내가 밥을 다 먹고 돈을 내고 나올 때까지 내게 열일곱 번의 죄송합니다를 반복해서 발음했다. 죄송합니다. 난 쇠고기 덮밥을 먹었는지 죄송합니다를 먹었는지 헷갈려 우선 죄송합니다에 7천원을 지불했다.
 그리고는 점심 값으로 지불한 7천원을 가계부에 적었다.

점심: 7천원-17x죄송합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원래 점심을 같이 먹었어야 했던 사람이 생각났다. 그래서 휴대폰을 꺼내 그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죄송~오늘 점심 약속 못 지킬 듯. 부장님이 긴히 할 얘기가 있다네...담에 내가 맛난 거 사 줄게요.

 얼굴도 한 번 못 본 사람한테 이런 메시지를 받는 것도 신기했고,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번 듣는 것도 신기했다. 사람들은 이런 삶을 사나보다 하고 메시지를 지우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깜짝 놀라서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아스팔트 바닥에 전화기가 타닥하고 부딪쳐서 뒹굴었다. 아...... 다시 전화기를 주웠는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깨지지 않았다. 꺼진 전화기를 다시 켜 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켜지지는 않았다. 마침 옆에 있던 매장으로 전화기를 고치려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직원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내가 문을 열자마자 나를 반기는 인사를 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전화기를 떨어뜨렸는데요, 깨지진 않았는데 고장이 난 것 같아요.”
“잠시만요.”
그렇게 난 그 매장에서 두 시간을 고장난 전화기를 고치는 데 보냈다. 물론 그 기계 덩어리를 고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을 또 치뤄야했다.
“고객님, 총 십이만사천칠백원입니다. 결재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고친 전화는 다시 새 것 마냥 반짝 윙크를 했다. 그 윙크를 나도 반사해 줬다. 통화기록을 보니, 그가 전화를 했던 것을 내가 떨어뜨려서 못 받았었나보다. 전화를 해 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어차피 근무시간이겠거니 생각하고 퇴근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우선 매장을 나왔다.
“안녕히 가십시오!”
 우렁찬 인사말은 매장이 쩌렁쩌렁 울리게 했다. 그 새하얀 매장은 그 인사말로 진동하고 있었다.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우선 걸었다. 주머니에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다. 혹시나 또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렇게 계속 길을 걷다가 이제 전화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전화기를 보니 6시가 이미 훌쩍 지났다. 아니, 사실 이제 전화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걷는 내내 언제 전화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면 사람들은 일정한 시간과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 같아 보였는데, 난 익숙하지 않은 이 계획적인 시간표들을 내가 잘 섭렵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점심을 먹고 싶은 시간에 점심을 먹기 보다는 점심을 먹어야 하는 시간에 내가 그를 만나러 그의 회사 앞으로 가야 하는 일이 참 신기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신기한 일이 아니고, 그냥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꾸 걱정이 됐다. 또 당연한 일인데, 내가 잘 모르는 일들이 많이 생길까봐. 일단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뭔가 의사소통이 깨진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지금 전화 통화 할 수 있어요?”
“아, 네. 아까 전화 드렸었는데요.”
“네, 전화기를 떨어뜨려서 전화를 못 받았어요. 죄송해요.”
“아 그랬군요. 그리고 나서 전화기가 꺼져있길래 화가 나셨나 했습니다.”
“그런 건 아니구요. 전화기를 고치느라 전화기가 꺼져 있었어요. 오해는 푸셨으면 해요.”
“점심 약속 못 지켜서 죄송했어요. 대신 내일 저녁은 어때요?”
“글쎄요.”
“이모님한테 꽃집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꽃집은 일찍 문 닫지 않나요?”
“아, 네. 글쎄요.”
“그럼 내일 제가 꽃집으로 찾아 갈게요.”
 그리고 그는 전화를 뚝 끊었다. 내가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우리 이모는 무슨 생각에 내 이야기를 이 사람에게 전한 것일까? 그 다음날 저녁 그는 정말 내 꽃집 앞에 나타났다. 플라워라고 적힌 나무 입간판을 들여 놓으려고 하는데, 휴대폰을 고칠 때 매장을 들어설 때 우렁차게 인사했던 사람들의 목소리 같이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반갑습니다. 드디어 뵙네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제가 정리 하려면 아직 좀 더 있어야 되는데, 저기 앞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만 기다리시겠어요?”
“같이 도와드릴까요?”
“아니 괜찮아요. 금방 정리해 놓고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이모가 만나라고 한 남자를 눈앞에 두고 그린티라떼를 마셨다. 꽃이 아닌 사람과 장시간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는데, 이를 증명이라도 한 듯이 난 한 시간도 못 돼서 대화거리가 동나고 말았다. 그는 최근에 본 영화며, 좋아하는 꽃이며 이것저것 이야기거리들을 찾아서 대화를 나누려고 했지만, 난 그다지 재미도 없고, 피곤하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머리 속에 가득했다. 그리고, 새하얀 카페의 조명이 머리 속에 다시 종소리를 울리게 했다. 하얗게 많은 기억들이 날아가고 나서,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도 깨달았는지 이제 그만 가자고 했다.
 밖에 나와서 그는 활짝 웃는 얼굴로 내게 인사를 했다.
“오늘 즐거웠어요.”
“아, 네. 다행이네요.”
 그가 정말 즐거웠을까? 내가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꽃도 아닌, 사람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은 내게 도전이었지만 그에게는 곤혹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는 왜 맘에도 없는 말을 했을까? 즐겁지 않아 보였는데 말이다. 즐겁지도 않았는데, 즐거웠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그냥 웃기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즐거웠다는 거짓말이 훤히 들통나지 않도록 아주 조심히 시선처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 거짓말이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해야만 할까?
 꽃집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은 늘 그랬듯이 첼로 소리를 빼고는 조용하다. 도시와 시골을 연결하는 그 지점에 꽃집이 있었다. 그는 도시에서 꽃집까지 찾아왔고, 나는 시골에 살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도시로 돌아갔고, 나는 그 반대 방향으로 집으로 걸어간다. 내가 꽃집을 열기로 했던 날, 시골에서 도시로 마음을 조금이나마 열고 싶었던 그 날, 내가 다시 도시에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중턱에 내 꽃집을 얹어 놓고 싶었다. 벌써 그렇게 꽃집을 연 지 5년이 흘렀고, 그러는 동안 첼로 소리가 매일 나는 이웃의 연습소리를 들으며 매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행복하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 그가 도시로 돌아가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이 길이 다른 날보다 훨씬 더 조용하다. 첼로소리도 나지 않는다. 왜 오늘은 연습을 하지 않을까? 공연이 있어서 도시에서 늦게 오는 것일까? 첼로소리가 들리지 않자 매일 걷는 그 길이 더욱 길게만 느껴졌다.
 오자마자 샤워부스로 뛰어들었다. 걸어오느라 숨이 찼다. 손은 얼음같아졌다. 아직 겨울이 아니니까 장갑을 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착각은 얼른 버려야겠다. 내일부터는 11월이지만 장갑을 끼고 다닐 거다.

꽃집_0


 3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한 자도 못 쓰고 있다. 뭐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이겠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앉으면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이런 저런 다른 일들로 바쁘거나 아예 창 밖만 물끄러미 몇 시간 째 쳐다보는 일이 생기고 만다. 왜 그런지는 모두들 다 아는 공식이 그러하다고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막상 글을 쓸려고만 하면 생기는 일이니까 말이다.
 노트북을 꺼내서 전원을 켜기 전까지만 해도 입에서 술술 나오던 이야기는 전원이 켜지고 워드 프로그램이 열리면서 하얀 화면이 눈 앞에 나타남과 동시에 내 머리 속에서 하얗게 없어져 버리고, 딸랑딸랑 종이 울린다. 머리 속에서 종이 울릴 때면, 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또 와 버렸구나.
 그래서 그 종소리를 듣고 난 뒤에는 그 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다시 조심히 더듬어 생각해 본다. 방금 전까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왜 컴퓨터를 열어서 글을 쓰려고 했었지? 도대체 무슨 생각이 머리 속에 꽉 차 있었기에 그걸 뱉어 내고 싶어 했었던 것일까? 왜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몇 시간 지나다 보면 노트북은 곧 전원이 꺼지고 만다. 다시 전원 코드를 찾아서 꽂고 나면 또 다시 하얀 화면만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우선 웹서핑을 시작한다. 뉴스를 읽거나 요즘 뜨는 유행어는 뭔지 검색어는 뭔지 이것저것 살피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가고, 오후에 시켰던 커피는 저녁 때 확 식어 있고,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는 그 차가운 온도를 내게 차디차게 내민다. 창밖은 나름 밝았었는데, 창가에 있는 전등까지 깨끗하게 모두 켜지고 나면, 그래 집에 갈 시간.
 카페를 나와서 네온 사인들이 즐비한 도시의 거리 이곳 저곳을 누비다 보면 매연 연기에 괴로워 하다가 얼른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리 속에 가득차 있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 드디어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