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꼬,
도꼬?
이마 난지?
아직도 안 나왔어?
이제 꽃집도 하기 싫은거야?”
“오까아상,
지금 막 도착했어요.”
급히
달려와 전화를 받느라 아직 꽃집 안에 불도 못 켜고
우두커니 수화기만 우선 들었다.
“하나꼬,
크리수마수와?”
“크리수마수?”
“난까오모시로이모노아루나노?”
“아리마셍케도......”
“니혼에
료코. 도우?”
“오까아상,
니혼와 죳또....”
“오오사카또
크리수마수, 난까
로만치쿠나!”
“오까아상!”
“맞데이루요.”
“오까아상,
오까아.....상!”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는 일방적이다.
꽃집을 열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도
일본에서 엄마와 함께 요리를 배우는 게 어떻겠냐고
한 달 넘게 나를 설득했지만,
나도 그 엄마에 그 딸.
결국 한국에서 꽃집을 열 수 있게
됐다. 그나저나,
이번 크리스마스를 정말 일본에서
보내야 하는 것일까?
엄마는 분명 크리스마스 때가 가장
바쁠테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족이며 연인들이 비싼 요리점을 찾아 돈을 쓰러
오기 때문에 그 때가 아마 가장 바쁠 시기일텐데,
엄마가 내게 일본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라고 하는 이유는 그 바쁜 일손을 거들라고 하는
이유도 하나 덧보태야 솔직한 대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연말연시가 되면 혼자 지내는 것도
싫어하셨고, 신정을
지내는 일본에서는 더욱 그런 분위기가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새해가 되면서 절정을 이루는 것 같았다.
엄마는
만주에서 태어났다.
엄마가 태어난 이듬해인 1945년
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만주를 떠났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나라에서
공공연히 존재한 인간 계급은 한국인을 가장 천한
백성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바느질 솜씨가 좋았던 외할머니는
남은 천조각들을 모아 기모노를 손수 만들어 입었고,
나가사키로 밀항을 시도할 때도
갈고 닦은 일본어 실력으로 일본인인 척,
위조된 신분증을 가지고 일본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히로시마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형을 찾아 갔지만 쉽게 찾을 방도가
없었고, 결국
흘러흘러 오오사카에 있는 외할머니의 여동생을 찾아가
함께 살게 됐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엄마는
더이상 그 두 도시에 돌아갈 일이 없게 생겼다.
결국 엄마는 오오사카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됐다. 외할아버지는
해방된 조선을 찾으려 했으나,
세월은 쉽게 흘러 어느덧 엄마가
6살이
되었고, 한국은
어느새 전쟁의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세월은 흘러,
엄마가 스무살이 됐을 때,
아빠를 만났다.
아빠와 함께 대학도 다니고,
외할머니가 하던 의상실을 엄마가
물려 받으려고 열심히 배우려고 시도 하기도 했다지만,
결국 엄마는 하고 싶어했던 음식점을
열었다. 예쁜
전통 일본식 가정집에서 시작한 작은 음식점이 지금은
오오사카에서도 꽤 큰,
그리고 유명한 음식점이 되었다.
나도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일본인 아버지와 재일교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어를 잘 하지도 못하고,
태어난 지 3년
째 된 해부터 한국에서 줄 곧 살았다.
엄마는 아빠와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냥 한국에 와서 열심히 한식을
배웠다. 임신한
몸으로 한식당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아마 엄청난
도전이었을텐데,
당신께서는 그 일을 했기 때문에
현재의 당신이 있다고 항상 말씀하신다.
오오사카에 있는 그 음식점의 이름
또한, 하나야.
꽃집이다.
엄마가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것은 한국에서
자신의 조국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버렸다.
가끔씩 전화를 해 오거나,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지만, 엄마는
한국에 자주 오지 않았다.
친척집에서 사는 내게 친척이라는
존재는 참 멀고도 이상한 존재들이었는데,
사촌 동생들은 절대 나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일본에서 온 나같은 아이는 그저
매국노였을까? 뭐,
어렸으니까 그렇겠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인데도,
내가 미웠나보다.
그래도 그 때는 그들이 참 고마우면서도
미웠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것들이 걱정이 되기
보다는 우선, 크리스마스가
걱정이다. 최근
크리스마스는 5년
내내 꽃집 맞은 편에 있는 카페에서 보냈다.
카페 주인,
첼로,
그리고 앞집 할머니와 함께 크리스마스
케잌도 굽고 트리 장식도 하고,
그렇게 5년
간을 보냈는데, 내가
일본에 가 버리면 어쩐다......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노릇이었다.
어느새 해가 진다.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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