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소리가 없다는 것은 세상이 죽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골목길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정말 마치 빈집을,
아주 오랫동안 비어있었던 집은
지나오는 기분이었다.
분명 첼로는 그 집을 일주일만
비운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렸겠지만,
그 집을 지나올 때면,
마치 일주일이 아니라 일년이 넘게
비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은히 존재하던 그 소리가 침묵으로
바뀔 때 내 마음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침묵의 반응이
온 것일까? 왜
그 소리가 이리도 그립지?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길은 우리집 마당에서 뻗쳐 나온 나무
때문에 가로등 그늘이 함께 져 있었다.
그 조용한 그림자를 지나 대문에
도착하니 한숨이 나왔다.
오늘 하루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고민으로 너무 정신없이 보낸 것 같아서 아쉽기도
했다. 이렇게
빨리 살려고 꽃집을 연 것은 아닌데 말이다.
천천히 살기 위해서 여기서 꽃집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말이다.
친척집에서
살았던 내 학창시절은 내가 가장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었고,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척집에서 나왔다.
그 후에는 뭐든지 혼자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밥도 혼자서 먹을 수 있고,
잠도 혼자서 잘 수 있고,
공부도 혼자서 할 수 있고,
누구와 함께 있지 않아도,
아니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그렇게도 달콤할 줄은
몰랐다. 물론
그것도 길지 않아 더이상 달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1년을
혼자서 살고서는 일본에 갔다.
역시 엄마가 주는 밥을 먹는 것은
다른 느낌이었다.
엄마는 재일교포였지만,
늘 내게는 일본사람 같았다.
오히려 내게 일본사람의 피가 더
많이 흐르는데, 아니,
사실 엄마는 일본사람의 피가 하나도
흐르지 않지. 그런데,
나보다 훨씬 더 일본인 같았고,
난 한국에서 유학온 학생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사랑이 고팠던 내게 맛있는 밥을 지어내 줬다.
일본에서 그렇게 엄마밥을 먹고
3년
만에 다시 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 엄마는 나를 내 쫓듯 한국으로 돌려 보냈다.
내 일을,
내일을 찾을 수 있게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음식점을 하라고 계속 설득하셨지만,
결국 나는 꽃집을 당당히 차렸다.
보란듯이.
그런데,
이 꽃집이 이제는 내 삶에서 천천히라는
속도를 추월해 버리고 있는 것 같아서 가끔 무겁게
느껴진다. 특히
오늘 같이 꽃 생각보다는 고민거리를 머리에 안고
하루종일 있는 경우,
더욱 꽃들에게 미안해진다.
아무래도 이 길도 내게는 아니었나보다.
첼로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가 멀리 들렸다가,
그 소리가 더욱 그리운 퇴근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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