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12, 2011

꽃집_1


 겨울이 올 것만 같은데 아직 안 오고 있다. 11월은 늘 그런 느낌이었다. 뭔가 확 추워질 것만 같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하는 그런 날씨들의 연속-가을이긴 가을이지만 겨울을 기다려야 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춥게만 느껴지는 그런 시기, 11월은 늘 추운, 아니 실재보다 훨씬 추운 기다림이었다. 수능이 끝난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아직 춥지는 않은지 교복만 입고도 여기저기 당당히 걸어다니는 무리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이 대도시로 밀려드는 교복입은 학생들은 모두 시골에서 올라와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는데, 또 다시 더 큰 도시로 올라가기 위해 또 밤늦게 공부하고 이제 수능이 끝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날을 기다리는 듯 열심히 기도를 하는 자세로 성적표를 기다리겠지?
 눈이 올 것만 같은 날씨였지만, 11월은 그닥 춥지 않은 이유로 대신 비가 내렸다. 그래서 춥긴 하지만, 아주 춥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게 마음을 매어 두었다. 길거리 여기 저기 노점상에서는 겨울 준비를 위해서 부츠를 사라는 상인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부츠를 겨울마다 사는 건 아니겠지? 겨울 부츠를 매 겨울마다 샀다면 아마 집에는 부츠가 몇 개쯤 쌓여 있을지 생각해 보니, 신발장이 금방 폭발해 버렸다.
 폭발해버린 신발장을 정리하고, 우선 식당을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뭐 먹을만 한 것들이 있을까? 한국 음식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고,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식당에서 찾은 건 일본식 쇠고기 덮밥이었다. 주인 아저씨는 식당을 연 지 얼마 안 됐는지 메뉴를 하나 하나 정성껏 설명해 주려고 했고, 실수를 할 때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 하는지 세어보게 됐다. 늘 반복하는 일은 몇 번인지 세어보는 재미가 있는 법이다. 주인 아저씨는 내가 밥을 다 먹고 돈을 내고 나올 때까지 내게 열일곱 번의 죄송합니다를 반복해서 발음했다. 죄송합니다. 난 쇠고기 덮밥을 먹었는지 죄송합니다를 먹었는지 헷갈려 우선 죄송합니다에 7천원을 지불했다.
 그리고는 점심 값으로 지불한 7천원을 가계부에 적었다.

점심: 7천원-17x죄송합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원래 점심을 같이 먹었어야 했던 사람이 생각났다. 그래서 휴대폰을 꺼내 그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죄송~오늘 점심 약속 못 지킬 듯. 부장님이 긴히 할 얘기가 있다네...담에 내가 맛난 거 사 줄게요.

 얼굴도 한 번 못 본 사람한테 이런 메시지를 받는 것도 신기했고,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번 듣는 것도 신기했다. 사람들은 이런 삶을 사나보다 하고 메시지를 지우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깜짝 놀라서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아스팔트 바닥에 전화기가 타닥하고 부딪쳐서 뒹굴었다. ...... 다시 전화기를 주웠는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깨지지 않았다. 꺼진 전화기를 다시 켜 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켜지지는 않았다. 마침 옆에 있던 매장으로 전화기를 고치려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직원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내가 문을 열자마자 나를 반기는 인사를 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전화기를 떨어뜨렸는데요, 깨지진 않았는데 고장이 난 것 같아요.”
“잠시만요.”
그렇게 난 그 매장에서 두 시간을 고장난 전화기를 고치는 데 보냈다. 물론 그 기계 덩어리를 고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을 또 치뤄야했다.
“고객님, 총 십이만사천칠백원입니다. 결재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고친 전화는 다시 새 것 마냥 반짝 윙크를 했다. 그 윙크를 나도 반사해 줬다. 통화기록을 보니, 그가 전화를 했던 것을 내가 떨어뜨려서 못 받았었나보다. 전화를 해 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어차피 근무시간이겠거니 생각하고 퇴근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우선 매장을 나왔다.
“안녕히 가십시오!”
 우렁찬 인사말은 매장이 쩌렁쩌렁 울리게 했다. 그 새하얀 매장은 그 인사말로 진동하고 있었다.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우선 걸었다. 주머니에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다. 혹시나 또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렇게 계속 길을 걷다가 이제 전화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전화기를 보니 6시가 이미 훌쩍 지났다. 아니, 사실 이제 전화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걷는 내내 언제 전화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면 사람들은 일정한 시간과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 같아 보였는데, 난 익숙하지 않은 이 계획적인 시간표들을 내가 잘 섭렵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점심을 먹고 싶은 시간에 점심을 먹기 보다는 점심을 먹어야 하는 시간에 내가 그를 만나러 그의 회사 앞으로 가야 하는 일이 참 신기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신기한 일이 아니고, 그냥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꾸 걱정이 됐다. 또 당연한 일인데, 내가 잘 모르는 일들이 많이 생길까봐. 일단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뭔가 의사소통이 깨진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지금 전화 통화 할 수 있어요?”
“아, . 아까 전화 드렸었는데요.”
“네, 전화기를 떨어뜨려서 전화를 못 받았어요. 죄송해요.”
“아 그랬군요. 그리고 나서 전화기가 꺼져있길래 화가 나셨나 했습니다.”
“그런 건 아니구요. 전화기를 고치느라 전화기가 꺼져 있었어요. 오해는 푸셨으면 해요.”
“점심 약속 못 지켜서 죄송했어요. 대신 내일 저녁은 어때요?”
“글쎄요.”
“이모님한테 꽃집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꽃집은 일찍 문 닫지 않나요?”
“아, . 글쎄요.”
“그럼 내일 제가 꽃집으로 찾아 갈게요.”
 그리고 그는 전화를 뚝 끊었다. 내가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우리 이모는 무슨 생각에 내 이야기를 이 사람에게 전한 것일까? 그 다음날 저녁 그는 정말 내 꽃집 앞에 나타났다. 플라워라고 적힌 나무 입간판을 들여 놓으려고 하는데, 휴대폰을 고칠 때 매장을 들어설 때 우렁차게 인사했던 사람들의 목소리 같이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반갑습니다. 드디어 뵙네요.”
“아, . 안녕하세요. 제가 정리 하려면 아직 좀 더 있어야 되는데, 저기 앞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만 기다리시겠어요?”
“같이 도와드릴까요?”
“아니 괜찮아요. 금방 정리해 놓고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이모가 만나라고 한 남자를 눈앞에 두고 그린티라떼를 마셨다. 꽃이 아닌 사람과 장시간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는데, 이를 증명이라도 한 듯이 난 한 시간도 못 돼서 대화거리가 동나고 말았다. 그는 최근에 본 영화며, 좋아하는 꽃이며 이것저것 이야기거리들을 찾아서 대화를 나누려고 했지만, 난 그다지 재미도 없고, 피곤하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머리 속에 가득했다. 그리고, 새하얀 카페의 조명이 머리 속에 다시 종소리를 울리게 했다. 하얗게 많은 기억들이 날아가고 나서,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도 깨달았는지 이제 그만 가자고 했다.
 밖에 나와서 그는 활짝 웃는 얼굴로 내게 인사를 했다.
“오늘 즐거웠어요.”
“아, . 다행이네요.”
 그가 정말 즐거웠을까? 내가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꽃도 아닌, 사람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은 내게 도전이었지만 그에게는 곤혹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는 왜 맘에도 없는 말을 했을까? 즐겁지 않아 보였는데 말이다. 즐겁지도 않았는데, 즐거웠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그냥 웃기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즐거웠다는 거짓말이 훤히 들통나지 않도록 아주 조심히 시선처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 거짓말이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해야만 할까?
 꽃집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은 늘 그랬듯이 첼로 소리를 빼고는 조용하다. 도시와 시골을 연결하는 그 지점에 꽃집이 있었다. 그는 도시에서 꽃집까지 찾아왔고, 나는 시골에 살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도시로 돌아갔고, 나는 그 반대 방향으로 집으로 걸어간다. 내가 꽃집을 열기로 했던 날, 시골에서 도시로 마음을 조금이나마 열고 싶었던 그 날, 내가 다시 도시에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중턱에 내 꽃집을 얹어 놓고 싶었다. 벌써 그렇게 꽃집을 연 지 5년이 흘렀고, 그러는 동안 첼로 소리가 매일 나는 이웃의 연습소리를 들으며 매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행복하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 그가 도시로 돌아가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이 길이 다른 날보다 훨씬 더 조용하다. 첼로소리도 나지 않는다. 왜 오늘은 연습을 하지 않을까? 공연이 있어서 도시에서 늦게 오는 것일까? 첼로소리가 들리지 않자 매일 걷는 그 길이 더욱 길게만 느껴졌다.
 오자마자 샤워부스로 뛰어들었다. 걸어오느라 숨이 찼다. 손은 얼음같아졌다. 아직 겨울이 아니니까 장갑을 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착각은 얼른 버려야겠다. 내일부터는 11월이지만 장갑을 끼고 다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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